여러분이 다음에 만드실 도구가, 저희한테는 교과서입니다
🤝 Bloom × Snowflake
🎤 주원 님(Next Challenge School 창업가) · 한원준(Bloom)
Snowflake의 가장 큰 연례 행사인 World Tour에 대한민국 대표 커뮤니티 6곳이 초청되었습니다. AWS, Microsoft 등 쟁쟁한 커뮤니티들과 함께한 자리라 더욱 영광이었습니다. 커뮤니티별 모객 경쟁도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저희가 1위를 차지해 50만 원 상당의 F&B 쿠폰을 받았습니다. 다음에 저희가 행사를 할 때 지원해 주시는 방식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코엑스에 몇만 명이 모이는 행사에서 저희는 두 가지 세션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Bloom을 소개하는 세션. 다른 하나는 저희가 또 연사로 서는 대신,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는 커뮤니티 멤버를 무대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대표 커뮤니티로 인정받은 이유도 전부 멤버들 덕분이니까요. 커뮤니티 안에서 공평하게 신청서를 받았고, 약 20분이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습니다. Next Challenge School이라는 창업 대안학교에 다니는 17살 친구였습니다. 첫 만남은 AWS 행사였습니다. 보통 30대에서 50대가 오시는 자리에 이렇게 어린 친구가 혼자 온 모습에 처음엔 놀랐는데, 마지막 조별 발표에서 팀장으로 올라와 발표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꼭 한 번 기회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반전 있는 선택을 했습니다. 저희가 참여하는 가장 큰 컨퍼런스 무대에 다음 세대를 세워서, 10대들이 AI를 얼마나 네이티브하게 쓰는지 보여드리는 것. 주변에서는 다들 긴가민가해 했고 저도 걱정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대를 보니, 지금까지 모셨던 연사 중 가장 자신감 있고 정돈된 발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부터 그 열일곱 살, 주원 님의 발표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자퇴는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었습니다
저는 자퇴한 10대 창업가입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지면 안 되는 키워드 세 개를 한 번에 가진 사람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첫 슬라이드에 객석에서 웃음이 났습니다. 원래는 시험 잘 보고 학원 다니는 평범한 중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AI가 코딩을 하고 음악을 만든다는 뉴스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AI가 발전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을 다녀서 결국 익히게 되는 게 뭘까.
학교를 그만두는 대신, 마감을 얻었습니다.
이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슬라이드입니다. 자퇴는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었다는 것. 숫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3년, 학교에서 검증하는 데 걸리는 시간. 3개월, 지금 본인이 만들고 내보내고 반응을 보며 검증하는 데 걸리는 시간. 자퇴라는 단어에서 흔히 떠올리는 반항도 좌절도 없이, 그냥 사이클 타임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은 검정고시 공부와 함께 창업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대안학교, 넥스트챌린지스쿨에 다니고 있습니다.

열일곱 살이 만들고 있는 두 가지
지금 두 개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는 CTO로, 하나는 CMO로.
첫 번째는 미션형 스크린타임 관리 앱 Lessgo입니다. JA Korea에서 투자를 받았습니다. 구조는 단순합니다. 목표를 정하고, 스크린타임 화면을 캡처해 인증하고, 친구와 겨루고, 실패하면 기부로 이어집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좋았습니다. 스크린타임 중독은 의지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의지로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에, 의지를 안 쓰는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대신 건드리는 건 청소년의 인정 욕구입니다. 혼자 참는 게 아니라, 친구들 앞에서 지는 게 싫어서 참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89퍼센트가 확신하지 못한다
두 번째는 여드름 진단 패치와 AI 맞춤 스킨케어를 만드는 여치들입니다. 10대와 20대에게 직접 설문을 돌렸고, 청소년 창업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설문 결과, 89퍼센트가 지금 쓰는 화장품이 내 피부에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본인 경험도 있었습니다. 피부과에서는 지성이라는데 올리브영에서 검사하면 건성이 나온다는 겁니다.
기존 선택지의 한계도 정확히 짚었습니다. AI 피부 분석 앱은 조명과 카메라에 따라 결과가 흔들리고, 피부과 정밀 진단은 정확하지만 10대가 감당할 가격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는 동안 붙여 pH와 스쿠알렌을 직접 측정하는 진단 패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천 원에서 육천 원 정도면 피부를 분석하고 맞는 스킨케어를 추천받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10대는 AI를 배우지 않고 씁니다

여기서부터가 객석이 가장 조용해진 대목입니다. 일단 청소년들은 AI를 배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밖에서는 AI 코딩 잘하는 법 같은 모임이 넘쳐나는데 무슨 말인가 싶지만, 실제로 쓰는 방식을 들어보면 이해가 됩니다.
첫째, 해설지 대신 질문부터 합니다. 예전에는 수학 문제를 풀다 귀찮으면 답지를 베꼈다면, 지금은 왜 그 답이 나오는지 설명하라고 하고, 이해가 안 되면 계속 되묻습니다. 둘째, 친구보다 AI에게 털어놓습니다. 친구에게 물어보기 애매한 고민을 밤늦게 솔직하게 적는다고 합니다. 이 현상이 본인도 조금 걱정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셋째, 내 생각의 완성도를 더합니다. 관심 분야의 최신 정보를 찾고, 머릿속에 있는 걸 실제 사업 아이템으로 만들어내는 데 씁니다.
저희 또래에게 AI는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일상을 돕는 유용한 도구에 가깝습니다.
학교에서 챗지피티 사용법을 가르쳐줘도 아이들은 배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만들어 나가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멈췄습니다
발표의 후반부가 이 세션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 10대 창업가는 성과와 가능성 이야기로 끝냅니다. 그런데 주원 님은 슬라이드 한 장을 통째로 실패에 썼습니다. 제목이 그리고 여기서 멈췄습니다, 였습니다.
첫째, 패치 색을 읽어내는 일. 조명이 조금만 달라져도 같은 색을 다르게 읽었습니다. AI가 알려준 성분으로 대학 실험실까지 가서 실험을 해봤는데 대차게 망했다고 합니다. 도메인 지식이 필요한 부분에서 AI는 그럴듯한 답만 줬다는 겁니다. 둘째, 실제 사용자 앞에서. 내 폰에서는 되던 것이 친구 폰에서 깨졌습니다. 물어본 적 없는 경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셋째가 이날의 정점이었습니다.
왜 안 되는지 모르니까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AI에게 물어볼 질문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바이브 코딩으로 앱을 만들다 데이터베이스에 문제가 생겼다는 알림은 오는데,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생겼는지를 찾지 못했다는 겁니다. AI가 만든 문제를 AI로 푸는 데서 역설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AI에 위임할수록 판단하는 근육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은 이제 막 하기 시작했는데, 열일곱 살은 그걸 이미 자각하고 있었고, 무대 위에서 먼저 꺼냈습니다.
여러분이 다음에 만드실 도구가
여러분이 다음에 만드실 도구가, 저희한테는 교과서입니다.
마지막 슬라이드는 이 문장 하나였습니다. 저희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고, 저희의 친구이고, 어떻게 보면 저희의 스승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방에는 데이터 인프라를 만들고 AI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열일곱 살이 자기 일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 준 셈입니다.
급식 메뉴를 카톡으로 받는 법
이어진 15분은 패널 토크로 진행했습니다. 제가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부터 꺼냈습니다. 학교 급식 메뉴가 홈페이지에만 올라와서 매번 확인하기 귀찮았고, 그래서 에이전트를 붙여 매일 아침 카카오톡으로 받아보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단한 기술이라서가 아니라 사고의 흐름 때문에 인상 깊었습니다. 내 삶에서 불편한 게 있다, 어떻게 해결하지, 아 이거 그냥 에이전트한테 물리면 되겠다. 우리는 보통 원래 하던 방식으로 먼저 풀려고 하고 AI는 나중에 떠올립니다.
다만 선을 하나 그어 주었습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10대가 AI를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는다는 것. 모르는 걸 물어보는 역할이 가장 크고, 정확한 목적을 갖고 쓴다기보다 그냥 삶에 녹아 있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학원 선생님 대신
친구들의 일상도 물어봤습니다. 요즘은 검색 엔진 대신 AI에게 질문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도 한쪽에 AI를 켜놓고 개인 과외처럼 쓴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모르는 문제를 과외나 학원 선생님에게 카톡으로 물었는데, 이제는 문제를 찍어 AI에 넣는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소통이 줄어드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이 대답을 듣고 마음이 좀 복잡했습니다.
학교는 어디까지 허용하나
학교에서 AI를 막을 수는 없는데 선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습니다. 넥스트챌린지스쿨은 AI 사용을 권장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과제하다 모르는 걸 물어보는 것도, 발표 자료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도 허용됩니다. 그런데 선이 있었습니다. 독서토론의 근거를 AI로 찾거나, 토론에서 내 생각을 말해야 할 때 AI의 생각을 자기 말처럼 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사고를 해야 하는 것들은 자제한다고 합니다.
사고는 내 머릿속에서 나오고, 표현하고 실행하는 건 AI에게 맡겨도 된다. 학교가 그 선을 그어준 겁니다. 사실 이건 회사도 똑같습니다. 신입이 선배 대신 AI에게 배우고, 사고 없이 AI가 쓴 보고서를 그대로 올리는 일이 지금 회사들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학교와 회사가 같은 문제를 놓고 각자 답을 찾고 있는 셈입니다.
노션 대신 대화를 통째로 보냅니다
어른들은 쓰는데 우리는 안 쓰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가장 큰 게 노션이라고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문서를 정리해 노션에 올리고 공유합니다. 그런데 이 팀은 AI 도구에 팀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AI와 나눈 대화 내용 자체를 보냅니다. 프로젝트를 사람 이름으로 만들어놓고, 나 이거 대화했는데 내 파일 들어와서 한 번만 확인해달라는 식으로 주고받습니다. 정리된 보고서가 아니라 맥락 그 자체를, 에이전트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넘기는 방식입니다. AI 네이티브한 조직이 뭔지 물으면 저는 이제 이 장면을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AI 티가 나도 상관없습니다
요즘 회사에서는 보고서에 AI 티가 나면 싫어합니다. 정성이 없어 보이고 환각이 있을 것 같으니까요. 10대들 사이에서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거부감이 없다고 합니다. 어차피 다들 AI를 쓰고, AI가 자기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AI가 만든 음악이나 이미지에는 아직 거부감이 남아 있다면서도, 중학생 때부터 봐와서 오히려 익숙해진 기분이라는 양가적인 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업계는 몇 퍼센트인가요
역으로 궁금한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준비해 온 질문이 있었습니다. 개발자가 없어진다, 리서처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친구들끼리도 많이 하는데, 정작 직장에 다니는 분들을 직접 뵌 적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업계에는 AI가 지금 어느 정도 침투해 있고 어떻게 쓰고 계시는지, 시니어들이 가득한 객석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세션 하기를 잘했다 싶었습니다.
친구 이야기도 하나 해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개발을 해서 백엔드를 하고 컴퓨터공학과를 준비하던 친구가 요즘 계속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나 큰일 났다, AI가 다 하고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가 교육이 흔들린다고 말할 때, 이미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구체적인 공포였습니다.
1년 뒤의 꿈
마지막으로 앞으로 1년의 계획을 물었습니다. 꿈은 크게 잡아야 파편이라도 잡는다면서, 1년 안에 서비스를 기업과 공공에 판매해서 매출 10억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습니다.
10억이 아니면 적어도 100만 원이라도 제 통장에 들어오게 벌어보고 싶습니다.
이 두 문장이 붙어 있는 게 좋았습니다. 허황된 목표와 아주 현실적인 목표를 동시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그날 코엑스에서




이날 Bloom은 Community Village에 부스도 열었습니다. 슬로건은 가장 솔직하고 활발한 AI 커뮤니티. QR을 스캔해 커뮤니티 신청을 하면 스탬프를 찍어드리고 디스코드 안내를 보내드렸습니다. 낮 12시에는 메인 스테이지에서 제가 발표를 했습니다. AI를 더 많이 쓸수록 오히려 우울해진다는 AI Blue에서 시작한 블로그 한 편이 어떻게 커뮤니티가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 20분에는 뒤로 물러나 앉아서, 열일곱 살이 그 이야기를 이어받는 걸 봤습니다.
부스 신청자 수도 여러 커뮤니티 중 1위를 했습니다. 만들어진 지 넉 달 남짓 된 커뮤니티가 이렇게 된 건 매주 와주신 멤버분들 덕분입니다.
하나만 남기자면
AI에게 물어볼 질문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날 나온 이야기 중 하나만 가져간다면 저는 이걸 고르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AI를 잘 쓰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고, 맥락을 어떻게 넣고, 도구를 어떻게 붙이는지. 그런데 정말 막히는 지점은 질문이 안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면 아무리 좋은 모델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결국 도메인을 얼마나 아는가의 문제입니다. 열일곱 살이 대학 실험실에서 실험을 망치고 배운 것과, 우리가 회사에서 배우고 있는 것이 정확히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기회를 만들어주신 Snowflake와, 무대에 서주신 주원 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기회를 만들어주신 건 매주 와주시는 멤버분들입니다. 그래서 무대도 멤버분께 돌려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자리가 생기면 같은 방식으로 하려고 합니다.
Bloom과 함께하기
Bloom은 사람과 기술이 만나는 오프라인 자리를 만듭니다. 다음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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