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ADHD형 인재가 뜬다
이름만 대면 아는 테크 기업들인데 AI 온도가 회사마다 극단적으로 달랐습니다. 한 곳은 전사 도입, 한 곳은 사용 금지. 그리고 인재상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회사마다 다른 AI 온도
놀라운 것은 다들 이름만 대면 아는 테크 기업에 다니는데 회사마다 온도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A사는 클로드를 전사적으로 도입하고 적극적으로 쓰라고 권장한다. 메신저와 이슈 트래커, 위키에 모두 연동해 기본 활용은 이미 하고 있다. 다른 AI 도구도 열려 있다.
B사는 클로드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특정 코딩 도구만 허용된다. 메신저에 AI를 붙이는 것이 신세계라는 걸 알고 있는데 회사가 막아놓으니 경험 자체를 못 한다. 콘텐츠나 크리에이티브 조직은 도입 자체에 거부감이 있어 더 복잡하다고 했다.
사내 격차도 극심하다. 옆 팀 사람이 조심스럽게 무슨 AI를 쓰냐고 물어보길래 봤더니 챗봇만 쓰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내 교육이 거의 없고 알아서 배우는 구조라 직원 간 활용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특히 직급이 높을수록 아직도 손으로 하는 사람이 꽤 있다고 했다. 잘 쓰는 사람일수록 자기 일에 집중하느라 알려줄 시간이 없고 각자만의 노하우라 전파도 어렵다. 그래서 격차가 줄기보다 벌어지고 있었다.
C사는 완전히 팀바이팀이다. 고객 대응 팀은 도입을 잘해서 반복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데이터 팀은 내부 데이터가 비정형이라 AI가 못 한다는 이유로 사람이 다 분석한다고 했다.
같은 테크 업계에서 이 정도 차이라면 비테크 업계는 어떨까. 그리고 이 온도 차이가 곧 회사의 미래 경쟁력 차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가장 큰 허들은 시간이다
가장 공통적으로 나온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AI가 좋은 건 아는데 제대로 써보려면 깊게 파고들 서너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이 없다는 것.
A사 쪽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팅이 꽉 차 있다고 했다. FOMO는 큰데 들여다볼 시간이 물리적으로 없다. 그 와중에 경영진은 리더 채널에서 매일 자기가 AI로 코드 몇 줄을 썼는지 공유하며 압박한다. 실무진이 시간이 없다고 하면 집에 가서 볼 시간은 있냐는 식으로 강하게 민다. 사내 강의는 많이 열리는데 역시 들을 시간이 없어 못 듣는 악순환이다.
결국 트리거와 시간이 없어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써본 사람과 안 써본 사람의 차이는 이미 엄청났다.
출근하면 든든하다
써본 사람의 대표가 B사 쪽이었다. 코딩 도구를 거의 비서처럼 쓰고 있었다.
모든 업무 데이터를 로컬에 폴더로 정리해두고, 스케줄을 걸어 매일 아침 자기가 해야 할 일만 보고받게 만들어놨다. 회의가 끝나면 회의록이 알아서 정리되어 담당자에게 배분되고 위키에 업데이트되는 것까지 자동화했다. 그것만으로 일이 크게 줄었다.
운영 업무도 인상적이었다. 나라별로 데이터를 입력하는 작업이 있었는데 예전에는 사람이 다 했다. 지금은 AI가 하되 세 가지로 구분하게 시켰다. 확실한 것, 추정치, 모르면 빈칸. 그리고 색깔로 표시해 한눈에 신뢰도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출근하면 옆 창에 도구가 켜져 있으면 마음이 너무 든든해요."
믿을 수 있는 동료 하나가 항상 옆에 앉아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시간이 없어서 못 쓴다는 이야기가 앞에서 나왔지만, 한번 시간을 내서 세팅해두면 이후로는 시간이 오히려 생기는 구조다.
18장짜리 문서의 역습
AI를 잘 쓰는 사람이 늘면 모든 게 좋아질까. 꼭 그렇지도 않았다.
A사에서는 주니어들이 제품 요구사항 문서를 AI로 찍어내면서 내용이 너무 방대해지고 있다고 했다. 18장짜리 문서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문제는 그걸 하나하나 검토하고 잡아내야 하는 시니어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AI가 생산성을 높였는데 오히려 검증 비용이 폭발하는 아이러니다. 리뷰도 AI로 대응하면 되지만, 아직 깊게 파고들지 못한 상태라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있었다. AI로 만들고 AI로 검증하는 시대가 왔는데 중간에 낀 시니어가 가장 고통받고 있었다.
인재상이 흔들린다
이 모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A사 쪽은 원래 깊게 몰입하고 파고드는 것이 강점이었다고 했다. 하나를 파면 끝까지 파는 타입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깊은 부분을 AI가 더 잘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여러 일을 동시에 빠르게 치는 멀티태스킹형, 컨텍스트 스위칭을 잘하는 주니어들이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AI에게 이것저것 던지고, 결과물을 빠르게 판단하고, 또 다른 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깊이가 무의미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깊이를 어디에 쓸 것인지가 달라졌다. 실행의 깊이는 AI가 가져가고, 사람에게는 무엇을 할지 정하고 결과를 판단하는 깊이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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