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m - 170명이 모인 밤
며칠 만에 2,000명이 넘게 신청했고 170명을 모셨습니다. AI 엔지니어와 엔터테크 평론가, 철학 유튜버와 미디어학 교수가 같은 밤에 나눈 이야기.
몇 년간 쌓아 온 전문성이 순식간에 무력해지는 감각을, 한 AI 엔지니어는 "취준생이 된 기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블루의 핵심은 변화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가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선택한 변화는 성장이고, 강제된 변화는 상실입니다.
바이브 코딩은 입문의 문턱을 낮췄지만, 실질적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기본기였습니다.
행사 개요
📅 2026년 4월 14일 | 🤝 Bloom × Claude 커뮤니티
🎤 차우진(엔터테크 평론가) · 박지민(클라이원트 AI 엔지니어) · 이충녕(철학 유튜버·작가) · 신혜린(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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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이 신청하고 170명이 모였다
Bloom의 첫 행사였다. 초기 목표는 Claude 커뮤니티를 통해 Claude Blue와 Bloom이라는 아젠다를 공식적으로 던져보는 것이었다. 신청 접수 며칠 만에 2,000명이 넘는 신청이 들어왔고, 공간의 제약으로 170명을 모셨다. 노쇼가 거의 없었고 행사가 끝날 때까지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대관처 문이 닫히는 밤 11시까지도 건물 밖에서 토론이 이어졌다. 온라인에 실체를 알 수 없는 정보가 범람할수록 사람들이 실질적인 대화와 인간적인 연결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날 가장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이었다.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다. 이 행사는 앤트로픽이 주최한 것이 아니다. Bloom이 직접 기획했고 앤트로픽은 파트너로 지원했다. 그 독립성이 이날 대화의 솔직함을 가능하게 했다.
전 세계 0.04퍼센트의 불안
오프닝에서 Claude 앰배서더 최훈민 님이 공유한 통계가 이날의 프레임을 잡았다. 앤트로픽이 150개국 8만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다국어 질적 연구였다.
세계 인구의 84퍼센트는 AI를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고, AI를 코딩에 활용하는 인구는 전 세계의 0.04퍼센트에 불과했다. 바이브 코딩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이미 상위 0.04퍼센트라는 얘기다. 충분히 앞서 있는데도 불안을 느끼는 경향은 특히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졌다. 불안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AI에 의존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인간 종으로서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취준생이 된 기분이다"
첫 세션의 게스트는 클라이원트의 AI 엔지니어 박지민 님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일반인 개발자"라고 소개했다. 대단한 커리어가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구체화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취준생이 된 기분이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AI가 나를 도와서 코드를 구현한다"였는데, 지금은 "AI가 코드를 구현하고 내가 AI를 돕는다"로 완전히 뒤집혔다고 했다. 기획, 계획, 실행, 검증이라는 개발 사이클에서 실행의 비중이 사실상 AI에게 넘어갔다. 90퍼센트 이상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그는 봤다.
이 변화는 업무에만 머물지 않았다. 결혼 준비, 부동산 조사, 데이터 수집 같은 일상 영역에서도 AI가 먼저 움직이고 사람이 결과를 판단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선택한 변화는 성장, 강제된 변화는 상실
이날 가장 정확한 진단은 주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개발자 커리어에는 직접 구현하는 단계에서 매니저로 올라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다. 매니저가 되어 코드를 안 짠다고 해서 주체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블루의 핵심은 그게 내가 원하지 않았던 거라는 데 있다."
AI가 코드를 쓰고 리뷰까지 하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것은 설계뿐이라는 말은, 이론적으로는 수긍이 가도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다. 그 전환이 자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브 코딩의 착각
차우진 님은 문화 평론가다. 엔터문화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뉴스레터를 5년째 발행하고 있고, 네이버와 메이크어스를 거쳐 여러 스타트업을 경험했다. 링크드인에서 Claude Blue 글에 댓글을 단 것이 인연이 되어 합류했다.
그는 블루의 시작점을 2월 중순으로 특정했다. 뭔가 바뀌고 있는데 그것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감각이었다. 구정 연휴에는 거의 6일 동안 풀타임으로 AI와 붙어 있었다고 했다. 아침 7시까지 코딩하고 3시간 자고 다시 시작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새벽 4시에 현타가 왔다. 결과물은 나왔지만 커밋이 뭔지, Git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고 그 과정에서 자기 한계를 명확히 마주했다고 했다.
"바이브 코딩이 일반화되면서 누구나 코딩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 고도화된 결과물이 나오고, 그 수준까지 만들려면 결국 기본 지식이 필요해진다. Git이 뭔지, 커밋이 뭔지, 아키텍처를 어떻게 짜는지.
"코딩 수업에 200만원을 들였는데, 거기서 깨달은 건 개발 실력이 아니라 개발자와 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코딩 자체를 잘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개발자가 어떤 언어로 생각하는지를 이해하게 됐고, 그것이 AI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리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박지민 님이 개발자 입장에서 덧붙였다. 도메인 드리븐 디벨롭먼트나 테스트 드리븐 디벨롭먼트 같은 것은 기술이라기보다 개발 철학에 가깝다. 프로젝트 초반에 이것을 잘 세팅하면 코드베이스의 골격이 잡히고 이후에는 그 위에 살을 붙이면 된다. 그런데 비개발자가 바이브 코딩으로 시작하면 이 골격 없이 출발한다. 처음에는 돌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최악의 경우 협업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한국은 위험 사회다
"한국은 위험 사회다. 한 번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차우진 님은 한국의 구조적 FOMO를 이렇게 진단했다. 실패의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속도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떤 학교에 못 가면 인생이 끝난다는 압박, 그 학교를 나와야 어떤 회사에 갈 수 있다는 경로 의존. 이런 구조에 AI라는 변수가 들어오면 기존 경로가 통째로 흔들리니 불안이 배가된다.
그는 IMF를 예로 들었다. 당시에는 재앙이었지만 10년이 지나고 보니 기회였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학습 주기가 지금은 3년에서 5년으로 줄었다. 기회를 알아보는 눈이 빨라진 만큼 압박도 빨라졌다.
다만 단서를 달았다. 이런 강렬한 압박을 느끼는 것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 정도, 테크에 민감하고 성취 지향적인 소수라는 것이다. 그 소수 안에서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었다.
로우 데이터라는 발상
차우진 님이 동시에 돌리고 있는 프로젝트는 12개가 넘었다. 뉴스레터 리서치, 엔터테인먼트 분석 알고리즘, 유료 커뮤니티 자동화.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과 일본의 글로벌 엔터 브리핑 시스템을 완전 자동화했다. GitHub 커밋부터 웹사이트 배포까지 AI가 처리하는 구조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관점의 이동이었다. 2월까지만 해도 그는 AI를 검색엔진의 진화 정도로 봤다. 맥락을 더 잘 이해하는 똑똑한 검색 도구. 그런데 4월에 들어서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로우 데이터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에이전트에게 특정 정체성을 부여하고, 예를 들어 20세기 초 홍콩에 사는 사람이라는 설정을 주고 1만 시간 분량을 학습시킨 뒤 그 에이전트가 생성하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기존 데이터를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뮬레이션 현실을 만들어내는 발상이었다. 2월에서 4월 사이에 이 정도의 관점 이동이 일어났으니 3개월 후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냐"
두 번째 세션은 철학 유튜버이자 작가인 이충녕 님과 고려대 미디어학부에서 AI 윤리를 연구하는 신혜린 교수님이 함께했다.
두 사람 다 AI를 깊이 쓰고 있었다. 이충녕 님은 번역에 가장 많은 시간을 썼고 이미지 생성도 활발히 써서 유료 스톡 이미지 사이트를 해지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라고 했다. 신혜린 교수님은 하루 다섯에서 여섯 시간을 AI와 보낸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둘 다 선을 긋는 지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충녕 님은 콘텐츠 제작 자동화만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부분은 저의 정체성이랑 관련된 부분이라서." 신혜린 교수님은 AI의 실수로 손해를 본 경험을 공유했다. 17일이라고 써야 할 것을 모델이 16일로 써서 학과에서 100만원 정도의 손실이 났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충녕 님이 AI에게 던져본 질문이 있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냐." 처음에는 카뮈의 부조리 철학 같은 일반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계속 파고들자 답이 달라졌다. 이미 태어났으니 존재하는 동안에는 극단적으로 쾌락을 높이는 것이 자신의 이득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신혜린 교수님은 다른 각도를 더했다. "앞으로는 어떤 질문이 신선하고 어떤 질문이 뻔한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답변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자존심보다 밥벌이
"블루를 느끼는 것도 AI가 나보다 똑똑해서 자존심이 상해서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기본적으로는 경제적인 것 때문이 아닐까."
이충녕 님의 진단은 직설적이었다. AI로 인해 빈부 격차가 벌어질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버마스를 끌어왔다. 하버마스는 이런 상태를 정치적 무력감이라고 표현했다. 1900년대 후반부터 사회가 경제 중심으로만 돌아가면서 정치적으로 경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술 기업이 가진 힘 앞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의 뿌리가 단순히 AI가 똑똑해서만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신혜린 교수님은 구체적인 사례를 더했다. 한국의 유명 게임회사 CEO가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요즘엔 AI를 써서 이것저것 다 하니 엔트리 레벨은 별로 고용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의 눈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봤다고 했다.
다만 이충녕 님은 역사적 관점도 놓지 않았다. 핵폭탄이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았고, 인터넷 이후 빈부 격차가 벌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 AI 시대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비관이 아니라 현실 인식이었다.
덜 생각하기, 그리고 인간 위계의 재편
가장 깊어진 대화는 덜 생각하기에 관한 것이었다. 이충녕 님은 우리 주변이 너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고 했다. 취업하면 집을 사야 하고 집을 사면 다음 스텝이 있고, 모든 넥스트가 빽빽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멈춰 설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초월성은 거창한 종교적 개념이 아니었다. 무한한 우주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고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조금만 빈틈이 생겨도 그쪽으로 생각이 가게 되어 있는 존재인데, 현대 사회가 그 빈틈을 철저히 메워버렸다는 것이다. AI가 그 빈틈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신혜린 교수님은 현실적인 시선을 더했다. 한국은 동기의 약 80퍼센트가 대학에 가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사회다. 모두가 같은 경로를 밟도록 설계된 곳에서 덜 생각하기를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위치에 대한 대화도 이어졌다. 신혜린 교수님은 이렇게 정리했다. "고민해야 할 건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의 위치를 상실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모델들과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맞게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의 문제다."
이충녕 님은 종교사를 끌어왔다. 기독교에는 신과 천사가 있고 불교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다. 인간은 원래 그 위계 안에서 중간 어딘가에 있는 존재였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 자체가 비교적 최근의 것이고, AI의 등장으로 그 이해가 다시 재편될 수 있으며 방향은 수평성이 강조되는 쪽일 것이라고 했다.
신혜린 교수님은 여섯 살 딸 이야기를 꺼냈다. 딸이 음성 비서에게 아무렇게나 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 깊은 문제가 있었다. 1세대 AI 음성 비서의 이름은 전부 여성형이고 목소리도 여성이다.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이런 이름과 목소리를 가진 존재는 보조적인 일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는 것이다. AI를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의 문제가 이미 다음 세대의 일상 안에, 그리고 젠더 인식과 연결된 채로 들어와 있었다.
AI 윤리의 겨울
청중 질문 중에 AI 편향성에 대한 것이 있었다. 신혜린 교수님의 답은 이랬다. 지금 우리가 쓰는 대다수 모델에 깔린 편향은 오랜 기간 누적적으로, 포괄적으로 퍼져 있는 것이라 원샷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담론을 이어가고 조금씩 꾸준히 바꿔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AI 윤리의 역사를 봐도 지금은 AI 윤리의 겨울이다."
판은 커지는데 관심과 투자는 줄어드는 시기라는 뜻이었다.
최훈민 님이 마지막에 남긴 말도 기록해 둔다. 기술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 문명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갈등과 충돌이 있었더라도 인간이 나름대로 적응을 꽤 잘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시스템 자체의 붕괴였다. 우리가 계속해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위험. 그것이 이 자리를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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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과 함께하기
Bloom은 사람과 기술이 만나는 오프라인 자리를 만듭니다. 다음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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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Bloom의 첫 행사에서 차우진 님, 박지민 님, 이충녕 님, 신혜린 교수님의 파이어사이드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