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m 커뮤니티의 정체성

워싱턴 사람들은 워싱턴 포스트를 읽지 않습니다. a16z가 말한 뉴미디어의 규칙을 듣고, 행사를 더 매끄럽게 다듬는 대신 날것 그대로 밀고 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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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 행사 현장
Bloom은 서른 번 가까이 행사를 반복하면서, 더 정제하고 더 다듬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찾아온 이유는 정반대였습니다.

Bloom이 정제하지 않기로 한 이유

Bloom은 유니크 신청자 6,800명 규모의 AI 커뮤니티다. 시작은 단순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로 이야기할 만한 연사를 모셔 파이어사이드 챗을 하고, 오신 분들끼리 이야기할 수 있게 라운드테이블을 만드는 것. 그게 전부였다.

스케일이 커지고 여러 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압박이 생겼다. 더 정제해야 하지 않나. 더 전문적으로 진행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매번 300명에서 500명이 신청하고 150명 이상이 실제로 모이는 이유를 되짚어보면 답은 반대쪽에 있었다.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사람이 올라와서 친구들끼리 던질 법한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게 오히려 다른 행사에서 볼 수 없는 지점이었다.

a16z가 정리한 뉴미디어의 규칙은 이 직관에 이름을 붙여준다.

워싱턴 사람들은 워싱턴 포스트를 읽지 않는다

이야기는 워싱턴에서 시작한다. 상원의원을 비롯한 워싱턴 사람들을 잔뜩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고 한다. 여기 사람들은 대체 뭘 읽습니까. 답은 한 개인이 쓰는 뉴스레터였다.

이게 왜 놀라운가 하면, 워싱턴이야말로 레거시 미디어의 마지막 보루라고 다들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드미디어를 계속 볼 곳이 있다면 워싱턴 정도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마저도 사실이 아니었다.

친구와 점심 먹으며 할 이야기를 그대로

뉴미디어의 첫 번째 규칙은 진정성이다. 정확히는 문을 닫고 사석에서 할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느냐다.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너무 단정하게 굴고,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은 티를 내려는 것이다.

마크 앤드리슨은 90년대의 경험을 꺼낸다. 블로그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라 회사를 운영하면 무조건 기성 미디어를 통해야 했고 다들 미디어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는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고 표현했다. 중요한 사람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러 TV에 나오는데 다들 플라스틱 인형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진행자는 앵커 목소리를 쓰고 CEO는 가장 무해한 말만 골랐다.

당시 CEO들이 인터뷰의 성공을 무엇으로 판단했는지가 압권이다. 논란을 얼마나 적게 만들었느냐였다. 무대에서 내려오며 뉴스거리를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는 데 뿌듯해했다. 모든 뉴스는 나쁜 뉴스라는 전제였다.

그런데 그가 고용한 미디어 트레이너는 정반대를 말했다. 시사 프로그램 프로듀서 출신이었는데, 고전적인 미디어 트레이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딱 하나만 하겠다고 했다.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할 법한 이야기를 공적인 자리에서도 그대로 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 트레이너의 논리는 이랬다. 무대에서 어떤 주제를 이야기하는데 그 주제를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면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오직 자기가 깊이 아는 것만 이야기해야 하고, 깊이 안다면 본능적으로 흥미롭게 말할 수 있으며, 그러면 자연히 흥미로운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마치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친구에게 말하듯이.

올드미디어는 수비, 뉴미디어는 공격

전통 언론은 스스로에게 두 가지 기능을 부여했다. 하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저널리즘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두 번째가 첫 번째를 집어삼켰다는 진단이다. 객관과 활동가 사이의 선을 넘어버렸고, 결국 생각한 바를 말하지 못하도록 겁을 주는 방식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마크는 1994년부터 2017년까지 전통 미디어를 아주 많이 했다고 밝힌다. 가끔 악의적인 기사도 있었지만 90퍼센트는 하길 잘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 기간 대부분의 기자와 편집자들은 스타트업과 기술을 독자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여겼다. 그런데 2017년부터 달라졌고, 이후로는 의제를 가진 쪽이 완전히 우위를 점했다고 그는 본다.

그래서 새로운 접근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자기 채널과 우군의 채널을 통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목소리와 새로운 미디어 자체다.

벤 호로위츠는 재밌는 대비를 보탠다. 미디어의 황금기라던 시절에도 똑똑한 사람이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걸 보고 싶으면 방법이 하나뿐이었다. 80년대에는 자정에 방송하던 심야 대담 프로그램이 전부였고, 비디오 녹화기도 없어서 그걸 보려면 자정까지 깨어 있어야 했다. 거기서 지금의 팟캐스트와 뉴스레터 세계로 온 것은 믿기 힘든 진보라는 것이다.

브랜드가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 된다

벤이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를 구조적으로 비교하는 대목이 가장 깔끔하다.

올드미디어는 채널도 포맷도 극히 제한적이었고, 무엇보다 브랜드가 회사였다. 큰 신문사와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인용구 하나나 아주 짧은 인터뷰에 갇히고, 심지어 내가 아닌 브랜드를 대변하게 된다. 그래서 미디어 전략이라는 것이 회사를 회복 불가능하게 더럽히지 않으면서 이름만 알리는 일이 됐다.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이 올드미디어의 큰 규칙이었으니 극도로 수비적일 수밖에 없었다.

뉴미디어는 정반대다. 포맷도 채널도 무제한이고, 브랜드가 이제 사람이다. 사람들이 어떤 기업에 화가 났을 때 실제로 화를 낸 대상은 회사가 아니라 그 창업자였다. 그래서 마케팅에서 이기고 있는 회사들은 브랜드가 사람이다.

올드미디어가 위험한 이유는 그 유일한 규칙이 재밌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게 거기서는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그 사람은 조직에 사실상 영구적으로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3년쯤 있다가 떠날 마케팅 임원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좁은 빨대를 통과하려다 생긴 것

마크가 덧붙인 기술사적 설명이 이 대화에서 가장 똑똑한 대목이다.

1930년대까지 회사들은 기업 브랜드라는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포드 자동차 회사였고 에디슨 전기 회사였다. 그냥 문 앞에 붙은 사람 이름이었다. 그러다 30년대와 40년대를 지나며 추상적인 이름의 대기업들이 등장했고 소비재 브랜드가 쏟아졌다.

그가 보기에 원인은 중앙집중식 미디어의 등장이었다. 1930년대 이전의 미디어는 극도로 분산돼 있었다. 마을마다 신문이 열댓 개씩 있었고 작은 라디오 방송국이 사방에 있었다. 그런데 30년대부터 미디어가 유례없이 강하게 중앙집중화됐다.

중앙집중식 미디어는 아주 가느다란 빨대로 모든 것을 마시는 것과 같다. 방송사가 셋뿐이고 하루는 24시간이니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러니 회사의 메시지는 그 좁은 빨대를 통과하기 위해 최소 단위까지 압축되어야 했다. 그것이 기업 브랜드라는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람들이 그게 세상이 원래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믿어버렸다. 하지만 그건 중앙집중식 미디어 세계에서만 말이 되는 이야기였고, 그 세계가 지금 풀리고 있으니 새로운 접근이 작동하는 것이다.

세 시간을 견딜 수 있는가

이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롱폼 팟캐스트다. 대선에 나가는 사람이 세 시간짜리 팟캐스트에 나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2024년까지는 절대 아니라는 답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100퍼센트 그래야 한다는 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거기 나간다는 것은 세 시간 동안 무슨 주제든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새로운 기준선이다. 재밌어야 하고,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스스로 기회의 천장을 씌우는 셈이라고 했다.

물론 현실적인 고민도 나온다. 회사를 굴리는 것만으로 벅찬데 대변인 노릇이라는 두 번째 직업이 생긴 것 같다는 이야기, 평생 실험실이나 컴퓨터 앞에서만 살아온 창업자에게는 훈련받은 적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답은 냉정하다.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반드시 CEO일 필요는 없고, 조직에 오래 남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싸울 것과 흘려보낼 것

누군가 우리를 나쁘게 말할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도 나온다. 벤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누가 부정적인 말을 하면 언제나 반응하고 싶다고. 문제는 그 반응이 내 위치를 개선하는지, 아니면 상대가 자기 의견을 내가 대신 확성기로 틀어주길 바라며 던진 미끼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규율이 없으면 평생 반응만 하다 끝난다. 커질수록 달려드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나쁜 경우가 팔로워 쉰 명짜리 계정의 답글에 일일이 답하는 것이다. 시간 낭비인 데다 청중이 없는 사람을 대신 증폭시켜 주는 꼴이다.

반대로 제대로 된 상대가 제대로 겨냥해서 들어왔을 때는 다르다. 그건 브랜드를 키울 진짜 기회다. 벤은 자기들이 쌓은 브랜드의 상당 부분이 공격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다만 상대의 브랜드를 대신 키워주지 않으려면 싸울 상대를 잘 골라야 한다.

미움에 대한 관점도 명확하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해야 하며, 미지근한 중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립은 곧 재미없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Bloom은

결론은 단순하다. 흥미로운 사람이 흥미로운 주제로 대화한다면, 스크립트가 없고 정제되지 않아도 사람들은 끝까지 본다.

그렇다면 Bloom이 할 일도 분명하다. 흥미로운 주제를 찾고, 그 주제로 이야기할 흥미로운 사람과 대화하고, 그분이 경직되지 않도록 날것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 더 매끄럽게 다듬는 방향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더 밀고 가는 방향이다.


Bloom과 함께하기

Bloom은 사람과 기술이 만나는 오프라인 자리를 만듭니다. 다음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이 글은 a16z의 마크 앤드리슨과 벤 호로위츠가 뉴미디어의 규칙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하고, 그것이 Bloom의 운영 방식과 어떻게 맞닿는지를 함께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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