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없이 미국 법인 만들지 마세요
Airwallex 권윤아 님과 Outsome 피터 신 님이 짚은 해외 진출의 순서, 그리고 라운드테이블에서 나온 현장의 병목입니다.
Airwallex의 권윤아 님, Outsome의 Peter Shin 님과 함께 한국 스타트업과 SME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윤아 님 경험담이었습니다. 과거 Shopee에서 일하실 때 불과 5년 만에 한국 셀러들의 해외 매출이 40배 뛰었다고 합니다. 그 배경에는 해외 진출을 위한 물류와 결제 구조에 대한 이해가 시장 전반으로 퍼지면서, 많은 셀러들이 직접 해외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보통 대기업·상사·해외 총판을 통해 간접적으로 진출하는 반면, 한국은 대부분 직접 해외에 진출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사실 Airwallex와 같은 글로벌 금융 인프라는 주 타깃이 SME에 맞춰져 있는데요. 일본은 이런 「직접 해외 진출」 SME 비율이 약 5% 수준인 반면, 한국은 무려 20%에 이른다고 합니다. 즉,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직접」 해외로 나가려는 기업이 훨씬 많다는 뜻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매출을 확장하려면 국가별로 계좌를 만들고 법인을 세워야 하는데, 이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지 알기에, 이런 글로벌 결제·금융 인프라가 제공하는 시간·비용 측면의 이점을 다시 한 번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Peter 님은 아마 한국 스타트업 씬에서 거의 모든 분들의 멘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특히 Peter 님이 올려주시는 글들은 어디선가 퍼온 이론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부딪치며 얻은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사이트라서 더 실용적이고 디테일합니다.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이 정말 많습니다. Peter 님이 강조하신 메시지는 결국 시스템을 해킹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다소 합법과 불법의 경계처럼 느껴지는 영역이라도, 미국 YC 스타일에서는 그것조차 트랙션으로 평가한다는 점, 그리고 YC 자체도 미국 투자 시장에서 일종의 아웃라이어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꺾이지 않는 비전」을 끌어올 창업자를 계속 찾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세션이 끝난 뒤에도 약 40분간 라운드테이블이 이어지며 열띤 토론이 오갔습니다. 마지막에는 각 테이블 조장님들이 직접 나와 정리한 내용을 공유해 주셨는데, 테이블마다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나온 인사이트가 있어서 듣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멋진 공간을 지원해주신 올리브영의 최가인 님, 그리고 끝까지 함께해주신 Bloom 커뮤니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청서에 181분이 이름을 남겨주셨고, 그중 절반이 넘는 51%가 대표와 C레벨, 파트너였습니다. 이미 해외에서 매출이 나오고 있다고 답한 곳이 36%였고, 나갈 시장을 고르라고 했을 때 미국과 북미를 1순위로 꼽은 분이 56%였습니다. 해외 결제와 송금에서 어디가 막히는지를 하나만 고르게 했더니 규제와 서류, 세무 처리가 30표로 가장 많았고, 해외 계좌와 법인 개설 자체가 26표, 수수료와 환율 손실이 23표로 뒤를 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시리즈 A까지 왔다면, 미국에서는 이미 시리즈 D입니다
Peter Shin은 QueryPie를 공동 창업해 YC W20 기수로 들어갔고, 이후 500 Global에서 4년간 한국 프로그램을 총괄하다가 작년 7월에 Outsome이라는 액셀러레이터를 직접 차렸습니다.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거쳐 간 기업이 39곳인데, 아이디어 단계의 대학생부터 연매출 200억 원을 내면서 미국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대표까지 단계가 제각각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올해 초에 그와 화상으로 커피챗을 한 번 했다가 꽤 혼이 난 기억이 있습니다. 해외 진출에 대한 야망은 있는데 무엇을 파는지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이었고, 미국도 워낙 넓으니 서부인지 동부인지, 심지어 어느 도시인지까지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들었던 문장 하나를 다시 꺼내 물었습니다. 수단을 팔지 말고 목적을 팔라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말입니다.
잠옷을 만든다, 그러면 그 잠옷 안에 생체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IoT들이 있다라고 하면 또 다른 것처럼, 우리가 지금 아이폰 프로, 아이폰 맥스 다 사시지만 그게 그냥 타이타늄 섀시에 들어간 CPU 덩어리를 사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 창업자가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으로 그가 꼽은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자기 검열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시리즈 A까지 갔다면 미국 기준으로는 시리즈 D나 IPO에 가까운 난이도를 이미 통과한 것인데, 그럼에도 완벽한 제품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붙들려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양궁 전국체전이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비유를 들면서, 그 난이도를 그대로 들고 실리콘밸리로 가는 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차익 거래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 집착을 놓지 못한 채 건너가는 경우입니다. 정부 지원금에 자기 돈까지 보태 태워서 넘어가 놓고도, 현지 VC와 기업을 만나기 전날 밤에 코드 리뷰를 하고 QA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실리콘밸리로 가는 팀에게 주는 지표는 하나뿐이었습니다.
대표님, 거기 가서 스탠포드나 이런 데 가서 친구 한 명만 사귀어 오세요. 머리 염색 다 핑크색, 노란색으로 하셔서 뭐 하나라도 기억 남게 하시고 오세요.
정부 지원금 자체를 나쁘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들도 정부 지원금으로 TechCrunch에 갔고 거기서 YC를 만났다고 하면서, 다만 사업가 기질을 발현시키는 데에는 그 돈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미국에서는 FAANG을 나온 사람도 당장 연봉이 필요하니 창업의 밀도가 다르고, 실업급여와 예비창업패키지로 여섯 달을 버티는 선택지가 애초에 없습니다.
아웃라이어가 교과서를 쓰는 곳
Outsome이라는 이름은 Outliers build something에서 왔습니다. 그는 자기가 찾는 사람도,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도 결국 아웃라이어라고 했습니다. YC에 붙기 전 한국의 모든 투자사를 돌았지만 전부 거절당했고, YC가 인정해 준 다음에야 국내 대형 핀테크사들의 세일즈가 열리고 내로라하는 VC들이 줄을 섰다는 자기 경험이 근거였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자랐고 아이비리그도 삼성도 아니었던 자기 이력을 스스로 아웃라이어의 조건으로 꼽았습니다.

YC 자체도 아웃라이어였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YC가 Continuity Fund를 만들어 후속 투자까지 하겠다고 했을 때 Sequoia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VC들이 대놓고 반대했는데, 초기 투자와 후속 투자를 한 곳이 다 가져가면 자기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YC를 만든 사람은 대학 기금 같은 기존 출자자 구조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엑시트한 창업자였고, 펀딩도 실리콘밸리 바깥에서 들어왔습니다.
아웃라이어들이 만들어서 교과서를 쓰는 데가 실리콘밸리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왕따다, 그러면 본향은 실리콘밸리인 거예요.
그렇다면 아웃라이어를 어떻게 알아보느냐고 물었더니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혼자 고립될 수 있는 사람인데, 실리콘밸리에서 된장찌개도 못 먹고 서너 달을 버티려면 보통 독종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일단 실행부터 하는 성향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는 프레임워크를 수집하는 사회인데, 프레임워크를 받았을 때 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이 결국 좋은 아웃라이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병뚜껑 이야기로 받았는데, 한국 기업들에도 훌륭한 아이디어가 많은데 그게 말이 되느냐는 말을 계속 듣다 보면 뚜껑이 닫힌 채로 뛰게 되고, 뚜껑을 치워도 딱 그만큼까지만 올라가게 됩니다. 그 뚜껑을 치웠을 때 계속 올라갈 사람이 아웃라이어라는 뜻으로 들었습니다.
가장 좋은 설문조사는 입금이다
설문을 돌리고 반응을 보는 대신 돈이 들어오는지를 보라는 말을 그는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면 제품이 아직 없는 회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올해 YC 기수 기준으로 여섯 곳 중 한 곳이 services company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컨설팅이나 SI인데, 코딩이 쉬워진 지금은 업계 인사이트를 가진 사람이 인터뷰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 자체가 제품력의 증거가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는 영역에, 한국에서의 자기 검열의 난이도로 보면 사기라고 할 수도 있는 정도로 없는 제품을 파는 게 이런 얘기인 거죠.
그러면 만들고 나서는 어떻게 파느냐는 질문에는 철면피가 되어야 한다는 답이 먼저 나왔습니다. 콜드 메일이냐 링크드인이냐 하는 수단보다,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근육이 붙어 있느냐가 먼저라는 겁니다. 그 근육은 원래 있는 게 아니라 링크드인에 쓰고, 강연을 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직접 행사를 열면서 붙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타깃을 어디까지 좁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회사 단위에서 멈추지 말고 직책까지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헬스케어가 아니라 당뇨병 환자를 겨냥한 신약을 판매하는 병원, 혹은 그 신약의 보험 수가를 책정하는 보험사가 고객이고, 거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그 회사의 어느 직책이 내 고객인지까지 적어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B2B라면 물리적으로 가야 한다는 말도 단호했습니다. CES처럼 이름난 행사가 아니라 뉴욕의 건축 컨퍼런스나 치과의사만 모이는 컨퍼런스처럼, 미국이 덕후의 나라라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AI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아졌으니 남들이 에이전트로 콜을 돌리고 줌으로 두 번 만날 때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는 쪽이 유리해졌다는 논리였습니다. 그가 멘토로 모시고 있는, 올림푸스에 약 5,000억 원에 매각된 태웅메디칼의 서민수 대표 이야기가 근거로 나왔는데, 매출이 가장 많이 나는 병원은 세일즈 담당자의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먼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신뢰의 문제가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그는 질문의 전제를 뒤집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질적이라 베트남에서 온 사람이 단번에 보이지만, 미국에서 베트남 억양으로 영어를 하는 사람이 시민권자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아무도 여러분한테 묻지 않으면 얘기하지 마세요. 한국에서 왔고 11월 2일부터 11월 7일까지 있는데, 얘기하지 마세요.
내가 언제 돌아간다고 먼저 말하는 순간 상대는 자기 문제를 털어놓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명함을 들고 다니지 말고 웹사이트를 쓰되, 하단에 봉은사로 주소를 한글로 박아두지 말고 영어로 바꾸거나 아예 없애라고 했습니다. BTS와 김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권하지 않았는데, 현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매일 보기 때문에 진지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법인은 언제 만드느냐는 질문에는 기준이 명확했습니다. 계약이 체결되고, 한국 계좌로 3,000달러든 5,000달러든 실제로 받아봤고, 그런 구매가 다른 데서도 일어날 것 같을 때 만들라는 겁니다. 델라웨어 법인을 만드는 순간부터 델라웨어 프랜차이즈세와 주 세금을 비롯해 서너 가지를 신고해야 하고 현지 세무사 비용만 연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이 나가는데,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그 돈을 태울 이유가 없습니다.
매출이 나지도 않는데 미국 법인을 만들면 절대 안 돼요.
객석에서 나온 질문 두 개도 이 흐름에 붙었습니다. 미국 회계법인을 함께 운영하며 SOC2 보고서를 발행하는 대표는 빅테크 원청사가 정말로 그 인증을 요구하는지를 물었고, 답은 10만 달러 단위 이상의 계약을 준비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라면 SOC2 Type 2는 사실상 전제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에이전트 커머스를 빠르게 붙여 트랙션을 냈는데 대리 구매 형태가 결제 서비스 약관에 걸렸다며, 법을 넘나드는 액션을 취해도 괜찮은지를 물었습니다.
실리콘밸리 VC들이 되게 좋아하는 프레임워크 중에 하나가 hacking the system이에요.
다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는데, 그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으니 배리어를 뚫고도 반복 구매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왜 샀는지를 밝혀내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세션을 듣고 나서 저한테 남은 질문은 둘이었습니다. 우리가 파는 것을 회사 이름이 아니라 담당 직책 단위까지 적어둘 수 있는지, 그리고 완벽한 제품을 만드느라 첫 입금을 계속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였습니다.
카페에서 시작해 17조 원이 된 회사
메인 세션은 Airwallex의 권윤아 님과 나눴습니다. BCG에서 서울과 멜버른을 오가며 4년 10개월을 보내고, Shopee에서 7년 9개월 동안 한국과 일본의 크로스보더 사업을 맡았으며, 올해 5월에 Airwallex에 합류해 한국 사업과 금융기관 제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커리어를 고르는 기준이 일관돼 있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학 졸업 무렵에는 하고 싶은 게 명확하지 않아서 다음 커리어에 가장 도움이 될 선택으로 컨설팅을 골랐고, MBA를 거치며 하고 싶은 게 분명해진 뒤에는 조건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제 사업을 하듯이 무에서 하나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저의 재정 상태라든지 생존에는 위협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돈이 많은 회사에서 이제 갓 시작하는 사업부를 찾아가고 싶다.
Shopee가 딱 그 조건이었고, Airwallex도 같은 형태였습니다. 회사에는 돈이 있고 한국 사업은 아직 시작 전이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Airwallex는 기업가치 17조 원, 연간 처리액 440조 원 규모로 APAC이 가장 큰 매출 지역인데, 올해 결제대행과 선불전자지급수단, 외국환 라이선스를 확보하고 연말 법인 설립을 준비 중입니다. 이날이 한국 팀이 커뮤니티와 처음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회사의 시작은 2015년 멜버른의 카페였습니다. 원두를 해외에서 사 오는데 은행 스위프트로 송금하는 속도가 재고가 떨어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주문과 송금 타이밍을 맞추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창업자들이 직접 인프라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회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한 줄로 설명해 달라고 하자 답이 짧게 돌아왔습니다.
금융에서 투자와 투자 중개를 뺀 나머지를 저희가 전부 다루고 있어요.
일본은 잘하는 것보다 못하지 않는 게 중요한 시장
Shopee에서 한국과 일본을 함께 보던 시절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두 나라 셀러의 공통점으로는 직업 윤리가 강하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점, 그래서 플랫폼 안에서 신뢰 등급이 높다는 점을 들었고, 차이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일본이 훨씬 잘하는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못하지 않는 게 중요한 시장인 것 같아요.
일본 셀러는 실수를 안 하고 반품을 일으키지 않는 쪽에 집중하는 반면 매출을 키우는 투자에는 보수적이라고 했습니다. 제조는 잘하는데 마케팅은 한국보다 약하고, 내수 시장이 크다 보니 중소기업이 직접 수출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상사나 현지 유통사를 통해 나갑니다. 대신 제삼자 전문가를 신뢰하는 성향이 강해서 물류와 마케팅 전문 업체가 한국보다 훨씬 다양하고 세분화돼 있습니다. 생태계는 탄탄한데 셀러 개개인의 역량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정리였습니다.

숫자로도 차이가 드러나는데, 일본은 크로스보더 거래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 정도인데, 한국은 20%입니다. Airwallex가 한국에 5년 넘게 욕심을 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다만 제삼자를 끼면 비용 구조와 경쟁력이 나빠지니 직접 진출하겠다고 고집한 탓에 올해 초 한국 기업 인수까지 1년 넘게 걸렸다고 했습니다.
한국 셀러가 5년 만에 40배 성장한 배경도 물었습니다.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도 있었고 좋은 공급도 있었는데 중간 다리인 물류가 무서워서 막혀 있었다는 게 답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건당 2만 원에서 3만 원씩 들여 우체국 EMS로 보내거나, 아예 아마존 창고에 5억 원어치 재고를 배로 실어 보내거나 둘 중 하나로 양극화돼 있었습니다. 중소기업이 1,000원에서 2,000원으로 보낼 수 있고 5,000만 원어치 재고만 미리 넣어둘 수 있는 중간 단계가 생기자 숫자가 한 번에 뛰었습니다.
환전은 하고 싶을 때만 해야 합니다
계좌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저의 소박한 질문에 답이 명확했습니다. 금융에서 해외 사업자가 되는 순간 페널티를 받게 되는데, 환전 비용과 송금에 걸리는 시간이 그것입니다. 한 달에 10만 원짜리 송금 한 건이라면 체감되지 않지만, 빈도가 늘어나면 송금 주기에 맞춰 공급업체가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 지점이 병목이 됩니다.
둘 중 하나만 꼽아달라고 했더니 수수료와 환전을 들었습니다.

환전은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해야 되는데, 지금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우죠.
예시가 구체적이었는데, 베트남 구매자가 Shopee에서 한국 물건을 사면 베트남 동으로 결제하고 Shopee가 그걸 USD로 환전해 주는데, 받는 쪽이 한국의 원화 계좌뿐이면 거기서 강제로 한 번 더 환전됩니다. 올해 봄에 있었던 미국 관세 환급 건은 더 뚜렷했는데, 환급을 받으려면 현지 계좌가 있어야 하고 해외 계좌로는 아예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돈을 주는 쪽이 조건을 걸면 받는 쪽은 통화를 고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필요하냐는 질문에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계좌를 열고 실행까지 평균 이틀이 걸리는데 그 이틀의 가치를 몇십만 원으로 잡고, 강제 환전이 없어서 생기는 절감이 왕복 2%씩 4%에서 5% 정도이니, 역산하면 월 500만 원에서 600만 원의 거래 규모가 손익분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500만 원이 생기고 나서 세팅하면 전환 비용이 붙으니 그 전에 해두는 편이 낫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도 듣다가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봤는데, 매달 해외로 오가는 돈이 500만 원을 넘고 있는지, 원하지 않는 환전 때문에 왕복 4%에서 5%를 이미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가 결국 기준이었습니다.
해외 법인을 꼭 만들어야 쓸 수 있느냐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지금은 싱가포르와 홍콩, 미국 법인이 있으면 쓸 수 있는 범위가 더 넓고 한국 법인만으로는 제약이 있는데, 그 범위를 같게 만들려고 한 것이 올해의 인수이며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내년부터는 한국 법인만 있어도 해외에서 직접 결제를 받을 수 있게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앞서 Peter Shin이 했던 말과 결론이 같았습니다.
해외 법인은 안 만들어도 되면 안 만드는 게 좋거든요.
현장에서 나온 질문 가운데 Stripe와의 차이를 묻는 것이 있었습니다. Stripe는 해외 결제를 수취하는 게이트웨이인 반면 Airwallex는 거기에 더해 글로벌 계좌가 메인 제품이라 범위가 다르다는 개괄에 이어, 구체적인 사례가 따라왔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후불 결제 점유율이 높은 Klarna를 쓸 때, 프랑스 고객이 유로로 결제했는데 중간에서 자사몰 국가 통화로 환산해 처리하면 Klarna 쪽에서 결제가 취소된다는 것입니다. 고객이 본 통화와 정산 통화, 한국 사업자가 받는 통화를 같게 유지하느냐가 갈림길이었습니다.
밖에서 보던 것과 안에서 본 것의 차이를 묻자 답이 하나로 모였습니다. 한국은 직접 만나는 일이 유난히 중요하고, 그걸 한국 사람끼리 하는 걸 편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언어 문제만도 아니어서 외국 팀들이 한국 사업을 유독 어려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나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마지막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스스로를 너무 해외 사업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현지 사업자인 척, 굳이 해외 사업자 티를 내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여섯 명씩 둘러앉아 나온 현장의 병목
Bloom 행사의 꽃은 라운드테이블인데, 여섯 명이 한 조가 되어 이름과 소속, 오늘 온 이유를 나누고, 가장 최근에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조장을 맡아 마지막에 앞으로 나와 정리해 발표합니다.

가장 먼저 나온 조는 병목이 결국 고객을 구하는 일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요즘 창업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창업 자체가 레드오션이 되어가는 것 아니냐는 말도 그 테이블에서 나왔습니다. 그 조에는 미국에서 창업하고 싶다며 창업자들의 기운을 흡수하러 온 고등학생 두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결제 실무에서 나온 이야기도 구체적이었는데, 유통 회사에서 마케팅을 하는 참가자는 해외 부정 결제가 잦아서 마찰을 없애는 대신 일부러 여권 확인 같은 절차를 끼워 넣었던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미국 계좌가 없어 Stripe를 붙이지 못하는 개인 사업자는 판매자 명의를 대신 맡아주는 업체를 이어 붙여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딜 클로징이 안 된다는 고민이 여러 테이블에서 겹쳤습니다. 한 조는 한국의 공손함이 사업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동한다는 결론에 닿았는데, 면전에서 안 될 것 같다고 말하지 않는 문화 때문에 다 좋다고 해놓고 계약이 끝까지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그냥 안 된다고 말해준다는 비교가 붙었습니다. 그 테이블의 선배는 고객을 호텔로 모셔 와인을 곁들여 식사한 자리에서 막혀 있던 딜이 바로 체결된 경험을 이야기했고, 숫자로 생각하던 습관을 내려놓고 에고를 내려놓는 일이 사업에서는 필요하지 않겠냐는 말로 정리했습니다.
신뢰를 사는 방식에 대한 정리는 그중에서도 선명했습니다. 유학생 입국 행정을 자동화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조장은 전날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학교 일곱 곳과 계약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자기들을 믿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먼저 만난 현지 부주지사의 소개 덕분이었다고 했습니다. 한국 대학에 서비스를 넣을 때도 총장님을 팀으로 모신 뒤에 계약이 됐습니다. 천만 원 단위 계약에서 실제로 구매한 것은 제품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조에서 나온 B2C 사례로는, 스페인 진출 때 한국식으로 길고 자세한 랜딩 페이지를 만들었다가 전환율이 오히려 낮았고 인터넷 속도 때문에 영상이 제대로 뜨지 않더라는 경험이 공유됐습니다.

나라별 차이를 모아온 조도 있었는데, 중국에는 사전 예약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어서 아직 출시도 안 된 걸 왜 등록하라고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오고, 마케팅은 사실상 콘텐츠가 전부라 영상 기반으로 만든 것만 트래픽이 붙는다고 했습니다. 일본은 정해진 시간에 배달하고 수취하지 않으면 다시 가져가는 구조라, 소비자의 편의보다 물건의 상태가 먼저 온다는 점이 한국과 달랐습니다. 국가별 문화 코드를 모르면 커머스에서 사고가 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언어 장벽을 다룬 조의 정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천천히 말하거나 영어를 못한다고 먼저 밝혀두면 오히려 기대치가 낮아진 덕에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지 네트워크가 없으면 만들어 가는 수밖에 없으니 직접 싱가포르로 가겠다는 결론을 낸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법인 설립 시점을 놓고 토론한 조는 두 세션의 내용을 그대로 다시 확인했습니다. 매출이 나기 전에는 세울 때가 아니고, 매출이 발생한 뒤 대금을 받는 과정에서 반드시 법인이 필요한 절차가 생기는데 그때가 바로 세울 시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서 창업자의 비전과 가치관은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세금과 규제 때문에 법정 통화 대신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주고받는 사례를 들었다는 조, 보안 인증 유효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어떤 업체가 사기인지 가려낼 수 있다는 조도 있었습니다. 한 조장은 병목이 있어야 해결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말로 발표를 맺었습니다.

Bloom이 하려는 일도 거기에 가까운데, 잘된 이야기보다 아직 막혀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만드는 것 말입니다. 글로벌 진출은 한 번으로 끝날 주제가 아니라서, 다음에도 다른 각도로 한 번 더 파보려고 합니다.
Bloom과 함께하기
Bloom은 사람과 기술이 만나는 오프라인 자리를 만듭니다. 다음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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