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뉴욕에서 AI 창업하기

미국에서 5년간 쌓은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메인 지식이었습니다. 1998년 소프트웨어로 사업을 굴리는 회사들이 왜 AI 에이전트에게 기회가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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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 행사 현장

5년이 준 것

그는 미국 중소기업이 가장 많이 쓰는 재무관리 플랫폼에서 5년간 일했다. 주요 고객은 서비스 기반 소규모 사업자였다. 청소, 조경, 냉난방 설비 같은 업종이다. 5년 동안 이들과 직접 부딪히며 워크플로우를 속속들이 알게 됐다.

중요한 것은 이 기간에 쌓은 것이 기술이 아니라 도메인 지식이었다는 점이다. 어떤 업종이 어떤 순서로 일하고 어디서 병목이 생기고 무엇을 수동으로 처리하는지. 코드는 한 줄도 짜지 않았지만 그 5년이 창업의 기반이 됐다.

모두가 같은 수동 작업을 반복한다

그가 발견한 패턴이 있었다. 서비스 업종의 소규모 사업자는 전부 같은 흐름을 따른다는 것이다. 문의가 들어오면 응답하고, 협상하고, 견적서를 만들고, 계약서에 서명을 받고, 인보이스를 보내고, 대금을 수금한다. 업종이 청소든 조경이든 설비든 동일했다.

고객이 물어보는 질문도 거의 비슷했고, 사업자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전부 수동으로.

일부는 해외에 가상 비서를 고용해 이 작업을 정리했다. 시차가 있고 메신저로 소통해야 하고 실수도 잦았다. 그런데도 이 방식이 그나마 효율적인 방법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여기서 기회를 봤다. 이 반복적인 수동 워크플로우를 AI 에이전트가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시차도 없고 별도 메신저도 필요 없이 AI가 사업자와 함께 일하는 구조다.

전부 다에서 하나로

처음 구상은 이 워크플로우 전체를 자동화하는 것이었다. 문의 응답부터 수금까지. 그런데 소규모 사업자를 대상으로 시작해보니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당신이 내 가상 비서를 대체한다면, 그 비서가 하던 일 전부를 해줘야 한다."

전체를 커버하려니 유스케이스가 너무 많고 제품 범위가 감당할 수 없이 넓어졌다.

그러던 중 사모펀드를 통해 한 고객을 만났다. 미국과 캐나다에 200개 프랜차이즈를 가진 청소 서비스 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인보이스 발송 후 고객들이 늦게 결제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해외에 4명짜리 팀을 따로 고용해 수동으로 이메일을 보내며 미수금을 추심하고 있었다.

여기서 방향을 틀었다. 전체 워크플로우 대신 맨 끝단의 한 가지, 미수금 추심만 확실하게 하기로 했다. 전부 다 하겠다에서 하나를 잘하겠다로의 전환이었다.

이 일의 본질은 단순했다. 정해진 타이밍에 정해진 메시지를 보내고 응답에 따라 후속 조치를 하는 것. AI 에이전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다.

1998년 소프트웨어라는 시장

타겟도 바뀌었다. 원래는 소규모 사업자를 봤지만 실제 유료 고객이 된 것은 매출 3천만 달러 이상의 중견 기업이었다. 이 규모는 이전 직장의 플랫폼을 쓰기엔 너무 크고, 그렇다고 최신 SaaS를 쓰지도 않는다.

그가 만난 고객은 1998년 버전의 소프트웨어로 사업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 지점이 핵심이다. 레거시 산업, 레거시 소프트웨어, 레거시 프로세스. 전부 수동이고 전부 오래됐다. 그런데 바로 그 오래됨이 AI 에이전트에게는 기회가 된다. 최신 테크 회사는 이미 내부적으로 자동화를 하고 있거나 직접 만들 수 있다. 하지만 1998년 소프트웨어를 쓰는 회사는 AI를 자체 도입할 역량 자체가 없다. 그 간극이 시장이다.

제품 없이 받은 엔젤 투자

제품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 엔젤 투자를 받았다. 30만 달러에 지분 9퍼센트, 기업가치 330만 달러였다. 실리콘밸리 기준으로 표준적인 엔젤 밸류에이션이라고 했다.

팀은 두 명이다. 본인이 CEO, 공동창업자가 CTO. 컴퓨터공학 전공 엔지니어와 도메인 전문가의 조합이다. 인상적인 것은 제품 없이 받았다는 점이다. 도메인 전문성과 시장 이해, 문제 정의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채용은 유료 고객이 열 개로 늘어난 뒤 제대로 된 투자를 받고 진행할 생각이라고 했다. 다만 뽑더라도 AI를 잘 쓰는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고객 발굴은 여전히 수동이다

AI 에이전트 회사를 만들고 있지만 정작 고객을 찾는 일은 철저히 수동이었다. 첫 고객은 사모펀드 소개, 두 번째도 사모펀드 파트너 소개, 세 번째는 MBA 네트워크, 네 번째는 투자자의 이전 거래처. 거의 전부가 소개로 이어진 리드였다.

사모펀드를 통한 영업이 핵심 채널이었다. 프랜차이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는 자기들이 투자한 회사의 운영 효율을 높이고 싶어 하고, 그 지점에서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았다.

해외가 현지가 될 때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창업하는 일에 대해서도 물었다. 답은 두 가지로 정리됐다.

하나는 자기가 있던 도메인의 경험과 지식을 AI 시대에 지렛대로 쓰는 것이다. 그 분야가 레거시일수록 기회는 크고, 현지인만 아는 실제 페인포인트와 맞닿으면 더 강해진다.

다른 하나는 해외가 현지가 되는 순간이다. 비자나 이민 같은 허들을 넘고 나면 사람은 금방 적응한다. 오히려 더 힘든 것은 계좌를 만들고 집을 계약하고 통신을 개통하는, 그 나라의 시스템에 생활로 녹아드는 일일 수 있다. 사업과 별개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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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은 사람과 기술이 만나는 오프라인 자리를 만듭니다. 다음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이 글은 실리콘밸리에서 프로덕트 마케터로 일하다 뉴욕으로 건너가 AI 스타트업을 창업한 분과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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