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동료가 세일즈로 이직했다. 왜?
18년차 시니어 개발자가 다음 커리어로 기술 영업을 택했습니다. 개발 일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하향 평준화에 지쳤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커리어는 개발자가 아니다
그는 다음 커리어를 한다면 개발자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것은 작년 말이었다.
보통 그의 커리어라면 엔지니어링 임원이 되거나 연구소장을 맡는 길로 간다. 임원이 되면 그것도 또 다른 의미로 개발을 놓는 일이다. 그런 것과 별개로 개발 자체에 피로감을 느꼈다고 했다.
역설적인 것은 요즘 트렌드가 반대라는 점이다. 피로감을 느껴 떠났던, 그가 존경하는 거장들이 AI 시대가 되면서 다시 현업으로 들어오고 있다. 직접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누구나 코딩하지만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가장 힘주어 말한 대목이다. AI 시대에 개발자의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잘해야 살아남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바이브 코딩으로 누구나 코딩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잘하지 못하면 누구도 제품을 만들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경쟁이 심해졌다는 뜻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프로그래밍을 너무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옛날에는 개발 자체가 장벽이라 어설픈 제품도 팔아볼 수 있었다. 지금도 아이디어만으로 쉬운 걸 팔 수는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려면 상당한 지식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더 이상 그만큼 지식을 쌓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된 것을 못 만든다. 그런데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한다.
개발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개발자들도 요즘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 AI가 다 해주는 것 아니냐고 착각해서 엉망인 제품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일종의 하향 평준화다.
그는 거기에 지쳤다. 작년부터 같은 말을 해왔다고 했다. AI 시대에 더 공부해야 하고 더 똑똑해야 하고, 그냥 막 만들기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다시 증명하고 싶지 않다
그가 보기에 해외는 오히려 더 잘하는 사람, 더 똑똑한 사람이 살아남는 방향이다. 아이디어가 넘치거나 학습 능력이 좋은 사람이 산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그걸 보면서 자기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대신 자기는 지식이 많다고 했다. 경험이 18년쯤 됐으니 차라리 가이드를 해주는 쪽이 유리하다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다음 커리어를 기술 컨설팅이나 기술 교육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세일즈도 하고 싶었지만 세일즈는 아무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침 자리가 생겨서 옮기게 됐다.
전 같았으면 그럼에도 자기 길을 갔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쳤다고 했다.
"이때까지 나를 증명해 왔는데 또 다시 새로운 증명을 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결판이 날 때까지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자기가 틀릴 수도 있으니 아니었구나 맞았구나가 가려질 때까지 보겠다는 것이다. 거장들이 돌아오듯 자기도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비전공자라는 것, 그리고 도메인
그는 컴퓨터공학과 출신이 아니다. 비전공이라 오히려 자유로운 게 있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전공 여부가 뭐가 중요하냐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걸 회사에서 하나도 써먹지 못하는데 말이다.
개발로 들어온 경위도 들었다. 원래는 다른 일을 하려고 했는데 개발을 좋아했고, 엔지니어는 기본적인 코딩을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는 영상처리 개발자인데, 이 분야는 논문을 코드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코딩을 좋아하는 그에게는 좋은 연습이 됐다.
하다 보니 빌더로서의 메커니즘에 빠졌다. 공부해서 얻은 지식을 엮어 자기 손으로 구현하는 재미가 컸다고 했다.
특정 도메인에 집중한 적은 없다. 매번 그 회사가 집중하는 도메인을 따라갔다. 어떤 도메인의 전문가가 되면 유리하다고들 하지만 그는 한 도메인에 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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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년 경력의 시니어 개발자가 기술 영업으로 커리어를 옮기기 전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