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도입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보안이 아니었다
미국 대기업에서 AI 도입이 느린 이유를 물었더니 답이 너무 단순했습니다. 보안도 문해력도 아니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니 CEO에 가까운 PM
그는 뉴욕의 상장 테크 기업에서 PM으로 일한다. PM이라지만 이 회사에서는 미니 CEO에 가깝다. 손익을 직접 보고, 매출과 마케팅부터 기술 지원과 세일즈까지 하나의 작은 사업부를 통째로 운영한다.
문서 문화가 극도로 강하다. 제품 요구사항 문서를 쓰면 18장은 기본이고 모든 사람이 토시 하나까지 꼼꼼히 읽는다. 틀리면 공격이 들어온다.
이런 환경에서 AI 도구를 쓰지만 그냥 맡기고 내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반 기획부터 마지막 점검까지 본인이 꼼꼼히 해야 한다. AI는 두 번째 뇌이지 뇌 자체를 넘겨준 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회사 대시보드가 읽기 힘들고 원하는 데이터를 찾기도 어려우니, 테이블 데이터를 통째로 넣어 구조를 학습시키고 그 인스턴스 하나로 모든 데이터 질문을 해결한다고 했다.
"그게 내 데이터 엔지니어예요."
다만 그는 회사에서 소수파다. AI를 적극 활용하는 PM은 극소수이고 매니저급은 아예 어떻게 써야 하는지조차 모른다고 했다.
진짜 이유는 시간이다
미국 대기업에서 AI 도입이 느린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보안일까, 기술 문해력일까. 답은 너무 단순했다.
"시간이 없어요."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분기 목표도 맞춰야 한다. 요즘은 정리해고 분위기까지 겹쳐서 오히려 예전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한 사례도 있다. 어떤 회사는 전사적으로 일주일을 통째로 빼서 모든 직원이 AI만 배우는 데 투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그 일주일을 낼 여유가 없다. 실적을 내야 하고 고객을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조직에서는 요일을 정해 강제하는 방식이 통한다. 강제하면 되긴 된다. 다만 수천 명 규모에서 그것을 어떻게 조율할지는 다른 문제다.
더 이상 일을 잘하고 싶지 않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일 끝나고 누가 또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를 생각하고 싶겠어. 힘들잖아."
현실적인 말이다. 매일 쫓아가기 바쁜데 퇴근 후에까지, 주말에까지 업무 역량을 키우고 싶다는 여유가 크지 않다.
더 눈여겨볼 지점은 압박의 방향이다. AI를 이겨내기 위해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는 불안이 더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심이 가는 방향도 달라졌다. 회사에서 일을 더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언젠가 내 사업을 해야 할 텐데 그게 무엇일까 쪽으로 옮겨간다. 이 PM도 결국 자기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탐색 중이라고 했다.
직군이 해체되고 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PM이라는 직군의 미래로 이어졌다.
요즘은 최고제품책임자와 최고기술책임자를 합친 자리가 늘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AI가 있으니 제품 조직도 기술 리더가 볼 수 있고, 기술 리더도 제품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직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마케터가 코딩 도구에서 검색 분석을 하고, PM이 코드를 건드리고, 비개발자가 에이전트를 돌린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실력이 되어버린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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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뉴욕 상장 테크 기업에서 PM으로 일하는 분과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