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2030년 대담을 나눌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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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와 샘 올트먼의 흑백 사진

같은 2030년, 다른 체감

오후에 만난 개발자 친구는 AI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2030년쯤 되면 우리는 AI에게 대체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AI를 사람으로 볼지 말지를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

개발자 친구는 지금의 AI 논의가 상당히 피상적이라고 봤다. 많은 전문가도 삶이 바빠 시야가 얕고, 최근 AI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 물어보니 ‘진짜 전혀 감이 없구나’ 싶었다고 했다. 다들 AI에 대체되는 시점을 너무 멀리 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가 굳이 2030년 이야기를 꺼내는 건, 일반 사람에게도 대비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AI를 잘 다루는 사람들은 알아서 대비하겠지만, 그 사람들조차 ‘AI 이후의 미래’를 깊이 고민할 시간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세네카의 책에서 “군중에게서 멀어지면 고민거리도 사라진다”는 대목을 읽었다면서, AI 때문에 불안한 사람들은 결국 AI 소식을 계속 듣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소식을 매일 듣는 사람은 불안해하고, 듣지 않는 사람에겐 그 모든 얘기가 달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같은 2030년을 두고도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는 그만큼 멀다.

먼저 느낀 사람이 먼저 뛰쳐나온다

스타트업을 하는 형은, 팀에서 연차가 가장 높은 개발자의 친구 둘이 “할 만큼 해 본 것 같다”며 지난주에 개발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형은 이 변화를 먼저 몸으로 느낀 사람들이 먼저 뛰쳐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형의 팀에서도 개발자들 쪽에서 먼저 “차라리 AI 교육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형의 팀은 “Codex 어떻게 쓰나요?”를 묻는 동네 사람들에게 한 명씩 직접 알려 주기로 했다. 돈을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조건이었다. 아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AI를 가르치는 학원을 차리자는 말까지 나왔고, 형은 “어차피 교육이 돈이 되니 다들 결국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형은 그날 점심에 개발자들에게 “개발만 하지 말고,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지금은 진짜 콘텐츠가 해자니까, 우리를 콘텐츠 회사라고 생각하자고.

형은 이제 누구든 자기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인플루언서가 되든 뭐가 되든 ‘뭐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냥 예전처럼 하던 일만 계속하고 싶은 사람들은, 결국 시장에서 밀려날 거라고도 했다. 스타트업은 VC 투자를 받고 J커브를 기대하다 보니, 오히려 초반부터 ‘이게 스케일업이 되느냐’만 고민하다가 정작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스케일업 되는지 안다고, 스케일업이 되냐고. 그건 일단 하면서 스케일업하는 거지.

나도 머리로만 고민하는 건 결국 ‘안 해 봐서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로 알아도 실행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먼저 느낀 사람들이 먼저 움직이는 것도, 결국 몸으로 부딪쳐 봐야 안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일하는 방식도, 돈 버는 방식도 바뀐다

같이 Bloom을 꾸리는 동료는 Mixer에서 들은 말에 크게 공감했다. “AI가 개발자보다 비개발자의 생산성을 훨씬 더 크게 올릴 거다”라는 말이었다. 나도 Bloom 행사 준비를 하다 보면 실무보다 행정이 훨씬 많아서, 그건 AI가 다 하면 되겠다고 느낀다. 정작 ‘실무’는 행사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의자 놓는 정도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점심 Mixer에서 만난 분은 규제가 강한 업계에 있다 보니, 개인정보 때문에 자동화를 해도 되는지부터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 곳의 진짜 장벽은 결국 보안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이 개인정보를 특별히 더 잘 다뤄서 맡기는 게 아니라, 보안 서약서를 쓰고 ‘사람을 믿고’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출입을 확인하는 보안 장치를 붙인다. AI에도 내부망 같은 안전장치만 잘 두면 못 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모델이 가벼워지면서 내부망에 심어 쓰는 곳도 꽤 많다.

금요일 Mixer에서는 “AI로 일을 빨리 하는 법”보다 “AI로 돈 버는 법”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숏폼을 직접 올려 실험해 본 분의 경험이었는데, AI로 일을 생산성 있게 하는 영상에는 반응이 거의 없었고, 쉽게 조회수를 올리는 법을 알려 주는 영상에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몰렸다고 한다.

이미 개인 AI 에이전트를 가족 단위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어 Instinct 같은 서비스로, 내 에이전트가 상대의 에이전트에게 먼저 말을 걸고, 그 에이전트가 정리해서 상대에게 전하는 식이다. 높은 사람들 일정을 맞출 때 비서끼리 먼저 조율하듯, 직접 꺼내기 애매한 말을 에이전트를 통해 부드럽게 전하는 데 쓴다고 했다. 편하긴 한데, 어딘가 씁쓸하다는 반응이 함께 나왔다.

매일이 주말인 세상이 오면

미국에 있는 친구는 “많은 사람이 필요 없어지는 건 사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게 결국에는 좋은 일일 수 있다고 봤다. 적은 인원으로도 원래 굴러가던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돌릴 수 있게 되면, 엄청나게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이 필요한 모든 걸 빠르고 싸게 조달할 수 있게 되면, 모두가 ‘놀고먹어도’ 원하는 걸 계속 공급받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나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누가 노는 걸 보면 싫어할 거라고 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비교하고, 또 계급을 만든다. 모두가 똑같아지는 걸 사람들은 싫어하고, 비슷한 옷을 입어도 남이 더 좋은 옷을 입으면 마음이 쓰이는 게 사람이다. 그런 세상에서도 결국 계급이 나뉘지 않겠냐고 묻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모두가 같은 걸 하고 놀 필요는 없지. 그냥 모두한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거고, 그걸 고르는 건 각자의 마음이지. 그냥 매일이 주말인 거야.

어디선가 들은, “AI 최전선의 회사들은 결국 다 바이오 회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친구는 “세상의 문제를 다 풀고 나면 결국 기초과학으로 돌아간다는 뜻 아니겠냐”고 했다. 나는 점심 Mixer에서 “풍요의 시대가 온다”고들 하지만, 그게 정말 좋은 세상일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매일이 주말인 세상을 그리는 친구와, “다음 달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 사이에서, 솔직히 나는 아직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그 사이를 이어 줄 자리

개발자 친구가 Bloom에 대해 해 준 말도 이 지점에 닿아 있었다. 지금 AI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연구하느라 바빠 담론을 이야기할 틈이 없고, 담론을 이야기할 만한 철학적 깊이가 있는 사람들은 기술을 몰라서 못 한다.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풀어 줘야 하는데, 한국에는 그런 자리가 거의 없어서 Bloom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AI 담론을 Bloom이 다 가져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에는 AI 담론이 넘쳐 나고, AI가 누구나 관심 있는 주제가 되면서 어느 매체가 다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Bloom이 다루는 담론이나 방식 중에, 남이 따라 하기 어려운 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아픈 말’도 덧붙였다. 커뮤니티가 오래가려면, 사람들이 오지 않아도 어차피 이 주제를 계속 파겠다는, 그 주제에 미쳐 있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하고, 커뮤니티라면 결국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서울에서는 AGI 이후를 이야기해 줄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행사가 재미있으려면 유튜브에서는 못 보던 새로운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해 줄 사람이 드물다. 그 친구도 그래서 영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보를 전달하는 유튜브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봤다. 그런 정보 전달형 영상은 자기도 그냥 받아쓴 글로 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보를 나르는 영상’ 대신, AGI 이후를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영상을 만들려 하고, 나는 해외 창업자들이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만드는 과정을 조금씩 올리며 팬부터 모은다는 이야기를 보탰다.

미국에 있는 친구는 내게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원제 Range)을 권했다. 한 분야만 깊게 판 전문가보다, 여러 분야를 두루 아는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는 책이다. 여러 분야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나에게 필요한 책 같다고 했다. 나도 내 산업 안에만 있을 때는 아이디어가 잘 안 보이다가, 다른 산업을 보고 거기에 빗대어 내 산업을 보면 거울처럼 또렷하게 보일 때가 있다.

2030년을 먼저 살고 있는 사람과, 여전히 달나라 이야기처럼 느끼는 사람 사이를 잇는 일은, 결국 그 둘을 한자리에 앉혀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계속 만난다. 그날 저녁 형에게도 말했지만, 사람들과 커피챗을 하는 것 자체가 내 콘텐츠이고, 커뮤니티를 키우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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